
ICO의 화려한 부활? 한국에서 신규 코인 투자하기
지난 3부에서는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이 거래소와 같은 사업자들에게 얼마나 깐깐한 자격 요건을 요구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국가가 공인한 신뢰할 수 있는 사업자들만 시장에서 활동하게 된다는 점, 투자자 입장에서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죠.
(물론, 사업자 입장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이겠지만요)
이제 시선을 돌려, 시장의 또 다른 주인공인 '코인' 자체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바로 초기 코인 공개(Initial Coin Offering, ICO)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 ICO는 '100배 대박'의 꿈과 '쪽박'의 악몽을 동시에 안겨주며 시장을 뜨겁게 달궜지만, 수많은 사기 프로젝트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자 2017년 정부는 사실상 ICO를 전면 금지했습니다.하지만 이번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굳게 닫혔던 ICO의 문을 다시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물론, 과거의 무법천지 같던 방식을 벗어나, 그것을 공론화하기 위한 엄격화 규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묻지마 발행'의 시대는 끝났다: '발행신고제'의 도입
새로운 법안이 제시하는 핵심 규칙은 바로 '발행신고제'입니다. 주식 시장에서 새로운 회사가 상장(IPO)할 때 금융 당국에 사업 계획과 재무 상태 등을 상세히 담은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법안 제104조에 따르면, 앞으로 국내에서 디지털 자산을 발행하려는 자(발행인)는 반드시 금융위원회에 '디지털자산 발행신고서'를 제출하고, 금융위가 이를 수리해야만 코인을 발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신고서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요? 투자자로서 우리가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정보들입니다:
- 누가 만드는가? (발행인 정보):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팀은 누구이며 어떤 경력을 가졌는가?
- 어떤 기술인가? (기술 정보): 어떤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며, 기술적 특징은 무엇인가?
- 어디에 쓸 것인가? (사업 계획): 이 코인을 만들어서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총 몇 개를 발행하는가? (총 발행량 정보): 코인의 총 발행량은 정해져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추가 공급될 것인지에 대한 계획.
- 투자자 보호 계획은? (이용자 보호 계획): 해킹이나 기타 문제 발생 시 투자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과거에는 백서 한 장에 담긴 장밋빛 미래만 믿고 투자해야 했다면, 이제는 국가 기관이 1차로 검토한 공식 문서를 통해 프로젝트의 실체를 훨씬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비교 대상인 증권신고서는 도대체 어떤 문서일까요? 쉽게 말해, **'투자자를 위한 기업 종합 건강검진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업이 주식(증권)을 대중에게 팔기 전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문서죠.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속속들이 담겨 있습니다.
- 회사의 사업 내용: 이 회사가 정확히 무엇으로 돈을 버는지.
- 재무 상태: 지난 몇 년간 매출은 얼마였고, 빚은 얼마나 있는지 등 회계법인의 감사를 거친 객관적인 재무제표.
- 자금의 사용 목적: 투자자에게 받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 사업의 위험: "우리 사업은 이런 점들이 위험하니 투자 시 반드시 유의하세요"라고 회사가 스스로 밝히는 위험 요소들.
바로 이 증권신고서 제도 덕분에 투자자들은 '깜깜이 투자'를 피하고, 기업의 민낯을 확인한 뒤 신중하게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이 '디지털자산 발행신고서'를 도입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식 시장의 투명성과 책임감을 코인 시장에도 이식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인 셈이죠.
투자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 '손해배상책임'
투명한 정보 공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입니다. 만약 발행신고서의 내용이 거짓이거나, 투자 판단에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어서 투자자가 손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대목에서 아마 상당히 많은 투자자들은 FTX 사태를 떠올리게 될 겁니다.
세계 3위 규모의 거대 거래소였던 FTX는 자매 회사인 알라메다 리서치에 고객 자금을 몰래 빼돌려 위험한 투자를 하다가 결국 파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FTX가 발행한 FTT 토큰의 가치는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되었고, 수많은 투자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만약 FTX가 발행신고서처럼 명확한 정보 공개와 법적 책임 의무를 지고 있었다면, 과연 그렇게 무모하고 비윤리적인 운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어려웠을 겁니다.
법안 제106조는 바로 이 지점에서 투자자를 위한 안전 장치를 마련합니다. 허위 공시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발행인과 그 임원은 물론, 신고서를 검토하고 서명한 회계사나 전문가까지 연대하여 배상할 책임을 지도록 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사기성 ICO 프로젝트에 당해도 발행인이 해외에 있거나 책임을 회피하면 구제받을 길이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법적 책임 소재가 명확해져, 발행인도 훨씬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가장 큰 논란거리: '김치코인'만 잡는 반쪽짜리 규제?
하지만 이 새로운 규칙에는 한 가지 큰 논쟁거리가 숨어있습니다. 법안 제102조는 이 모든 발행 규제가 '외국에서 발행된 디지털 자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적었다는 점인데요.
이것이 왜 문제일까요? 국회 검토보고서 역시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 팀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싱가포르나 두바이에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코인을 발행한 뒤, 국내 거래소에 상장시키는 '우회 상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내 발행인은 까다로운 발행신고, 정보공개, 손해배상 책임을 모두 져야 하는 반면, 사실상 한국 프로젝트이면서 해외에서 발행된 코인은 아무런 규제 없이 국내 투자자에게 판매될 수 있는 '규제 차익'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재 한국과 연관된 프로젝트들을 보면, 대부분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발행한 뒤, 한국 거래소를 통해 유통되는 형태가 일반적입니다.
실제로 국내 대표 IT 기업들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들을 보면 이러한 경향이 뚜렷합니다.
- 클레이튼(KLAY):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가 개발을 주도했지만, 클레이튼 재단은 싱가포르에 설립된 비영리법인입니다.
- 위믹스(WEMIX): 게임사 위메이드가 만든 P2E(Play to Earn) 생태계의 핵심 코인이지만, 발행 주체인 위믹스 재단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거점을 두고 있습니다.
- 아이콘(ICX): 국내 블록체인 기술 기업 아이콘루프가 개발했지만, 아이콘 재단은 스위스 추크(Zug)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크립토 밸리'로 불리며 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선호하는 곳입니다.
- 페이코인(PCI): 결제 전문기업 다날이 만든 코인으로 한때 실생활 결제로 주목받았지만, 발행 주체는 싱가포르 법인이었습니다.
- 테라(LUNA): 지금은 사태의 중심이 되었지만, 한국인 창업자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 역시 싱가포르에 법인을 두고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 코인들 대부분은 해외에서 발행되어 유통되고 있으며, 실제로 이 프로젝트들의 가장 어려운 점은 한국의 규제로 인해 적극적인 사업 확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안타까운 페이코인)
이는 '김치코인'에게만 족쇄를 채우고, 해외 프로젝트나 '세탁'한 국내 프로젝트에게는 무한한 자유를 주는 불공평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투자자 보호라는 법의 원래 취지가 반감될 수 있는 심각한 허점인 셈이죠. 이 문제는 앞으로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가면서.
- ICO에 대한 제도를 마련한다는 것은 좋은 접근이지만, 그것이 정말 가상자산의 시장을 확장하는 길일지, 단순히 과거의 법령을 복사-붙여넣기 해서 투자자 보호 일변도로 진행될지는 미지수입니다.
- 개인적으로는 투자자 보호를 한다는 차원보다는, 가능한 국산 가상자산 프로젝트가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 우리 나라에서 발행된 코인들이 세계적으로 활개를 칠 수록, 우리가 새로운 디지털 패러다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 5부에서는 이 법안의 핵심이자 가장 민감한 주제, 바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테라-루나 사태 이후 모두의 관심사가 된 스테이블코인을 법은 어떻게 길들이려 할까요? 다음 편에서 그 구체적인 방안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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