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부에서는 사실상 금지되었던 '코인 발행(ICO)'이 '발행신고제'라는 새로운 규칙과 함께 어떻게 돌아올 수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정보 공개와 손해배상책임이라는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발행된 코인에 대한 규제 공백이라는 큰 숙제가 남아있음을 확인했죠.
[디지털자산기본법안 파헤치기] 4. ICO의 화려한 부활?
ICO의 화려한 부활? 한국에서 신규 코인 투자하기지난 3부에서는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이 거래소와 같은 사업자들에게 얼마나 깐깐한 자격 요건을 요구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국가가 공인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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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의 가장 뜨거운 심장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바로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규제입니다. '안정적인 코인'이라는 이름과 달리, 2022년 테라-루나 사태는 1개의 코인이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한다는 믿음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전 세계에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수십조 원이 증발하고 수많은 투자자들이 눈물을 흘린 이 사건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왜 필요한지를 온몸으로 증명했습니다.

이번 법안은 바로 그 뼈아픈 교훈에 대한 대응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Asset-Linked Digital Asset)'이라는 특별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다른 어떤 코인보다도 강력한 족쇄를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테라-루나 사태. 벌써 잊으셨다구요?
테라-루나 사태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이 현실화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테라 생태계는 두 개의 코인, 즉 1달러 가치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 테라(UST)와, 이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발행량이 조절되는 자매 코인 루나(LUNA)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투자자들은 UST를 예치하면 연 20%에 가까운 파격적인 이자를 주는 '앵커 프로토콜'에 열광했고, 이는 UST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차익거래' 메커니즘이었습니다. 만약 UST의 가치가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투자자들은 싼 UST를 사서 이것을 1달러 가치의 루나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UST 공급량이 줄어들어 가격은 다시 1달러로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이었죠. 반대로 UST가 1달러보다 비싸지면, 1달러 가치의 루나를 UST로 바꿔 팔면 차익이 생겼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이 알고리즘은 시장의 신뢰 위에서만 작동하는 아슬아슬한 모델이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5월, 대규모 자금이 한꺼번에 UST를 시장에 내다 팔면서 1달러 페깅(가치 고정)이 무너지는 '디페깅'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투자자들의 공황 매도(패닉 셀)를 유발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UST를 루나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루나의 발행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가격이 폭락하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가 시작되었습니다. 루나의 가치가 0에 가까워지자, 더 이상 UST의 가치를 지지해 줄 담보가 사라져버렸고, 결국 두 코인 모두 휴지 조각이 되며 약 50조 원 규모의 시장 가치가 순식간에 증발했습니다.
은행처럼 관리하겠다: '발행인 인가제'라는 강력한 허들
아무튼, ‘페깅’이 깨질 수 있다는 위험성에 대한 인지는, 이 법안을 제안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확실한 불안감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디지털자산기본법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서술하는 데 있어서, ‘자격’ 에 대한 논의가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즉, "아무나 스테이블코인을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법안 제103조는 국내에서 원화나 외국 통화에 가치를 연동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는 자는, 반드시 금융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여 '발행인 인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이는 일반 코인의 '신고제'와는 차원이 다른, 사실상 은행이나 증권사 설립에 준하는 수준의 강력한 규제에 해당합니다. 인가를 받기 위한 주요 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 대한민국 법인일 것: 해외에 서류상 회사를 두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원천 차단합니다.
- 최소 5억 원 이상의 자기자본: 부실한 회사가 시장에 발붙이지 못하게 막는 최소한의 자본력 기준입니다.
- 충분한 전문인력과 전산 설비: 해킹 등의 위험으로부터 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기술적, 인적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 건전한 재무 상태 및 사회적 신용: 발행사와 대주주의 재무 건전성과 도덕성까지 보겠다는 의미입니다.
- 타당하고 적절한 환불 계획 및 환불준비금: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투자자가 '1코인=1달러' 환불을 요구할 때 즉시 내줄 수 있는 충분한 돈(준비금)을 어떻게 마련하고 관리할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제출하고 검증받아야 합니다.
해외 주요국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러한 강력한 규제는 우리나라만 유별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국회 검토보고서(77p)를 보면, 이미 주요국들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해 우리나라 법안과 유사하거나 더 강력한 '자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 유럽연합 (MiCA 법안): 유럽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을 '전자화폐토큰(EMT)'이라 부르며, 오직 기존 금융법에 따라 인가를 받은 은행이나 전자화폐 발행 전문기관만이 발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실상 기존 금융 시스템 안으로 완전히 편입시킨 셈입니다. 준비금 역시 발행량의 100%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이 중 최소 30%는 실제 은행에 현금으로 예치하도록 강제합니다.
- 미국 (GENIUS Act 법안): 미국 역시 연방 또는 주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법인만이 '지급결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준비금을 발행량 대비 1:1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며, 그 준비금은 현금, 만기 90일 이하의 미국 국채, 하루짜리 환매조건부채권(RP) 등 극도로 안전하고 유동성이 높은 자산으로만 구성하도록 명시했다는 점입니다.

결국 글로벌 스탠더드는 명확합니다: "정식 금융 라이선스를 받고, 발행량 100%에 해당하는 안전자산을 투명하게 보유하라." 우리나라의 '발행인 인가제' 역시 바로 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을 맞추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당신의 돈을 지키는 3중 방화벽: 환불준비금 보호 장치
'만약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망하면 내 돈은 어떻게 될까?'
테라-루나 사태 때 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질문입니다. 법안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투자자의 상환 요구에 응하기 위해 쌓아둔 '환불준비금'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겹의 강력한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이는 발행사의 경영 리스크와 투자자의 자산을 분리하는 핵심적인 '방화벽' 역할을 합니다.
방화벽 1: 독립된 자산으로의 격리 (압류 금지)
가장 강력한 보호 장치입니다. 법안 제103조 제3항은 "누구든지 ... 발행인이 적립한 환불준비금을 상계·압류(가압류를 포함한다)하지 못한다"고 명시합니다.
이는 환불준비금을 발행사의 다른 빚을 갚는 데 사용하거나, 채권자들이 강제로 가져갈 수 없도록 법으로 막는다는 뜻입니다. 마치 은행이 고객의 예금을 은행 고유 자산과 분리하여 '별도의 금고'에 보관하는 것과 같습니다.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이 금고만큼은 투자자들의 몫으로 온전히 보존되는 것입니다.
방화벽 2: 위험한 사용의 원천 봉쇄 (담보 제공 및 양도 금지)
같은 조항에서 법안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발행인은 ... 환불준비금을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
이는 발행사가 환불준비금을 담보로 다른 곳에서 돈을 빌리거나, 다른 회사에 팔아넘기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준비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가 갚지 못하면, 준비금이 통째로 넘어갈 위험이 생깁니다. 이러한 위험한 '자금 돌려막기'나 '문어발식 투자'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준비금이 오직 투자자 환불이라는 본래 목적에만 사용되도록 묶어두는 효과가 있습니다.
'신용공여(信用供與)'란 쉽게 말해 '신용을 제공하는 행위', 즉 돈이나 자산을 빌려주거나, 채무를 보증해주는 등 신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금융 거래를 의미합니다. 법안에서는 이를 "금전·증권·디지털자산 등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의 대여, 채무이행의 보증... 등 거래상의 신용위험을 수반하는 직접적·간접적 거래"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방화벽 3: 투명한 관리 감독 (엄격한 운용 계획)
앞서 '발행인 인가' 요건에서 보았듯이, 발행사는 "타당하고 적절한 환불 방법 및 환불준비금 등에 관한 계획"을 금융위에 제출하고 검증받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돈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준을 넘어, 그 돈을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하고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국가로부터 승인받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앞서 살펴본 미국이나 유럽의 사례처럼, 준비금을 현금이나 단기 국채 등 극도로 안전한 자산으로만 구성하도록 강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발행사가 준비금을 위험한 곳에 투자하여 손실을 입는 것을 막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할 것입니다.
또다시 등장한 숙제: 해외 스테이블코인은 어떻게?
문제는 또다시 '해외'입니다. 4부에서 다룬 ICO와 마찬가지로, 법안 제102조는 이 강력한 발행인 인가 규정을 '외국에서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에는 적용하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테이블코인은 대부분 해외에서 발행된 테더(USDT)나 서클(USDC)입니다. 이들은 1코인을 발행할 때마다 실제 1달러의 현금이나 그에 준하는 안전자산(단기 국채 등)을 준비금으로 쌓아두는 '자산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의 대표 주자입니다. 테라(UST)처럼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실물 자산을 담보로 잡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다고 평가받죠.
하지만, 많이 이용된다고 해서 더 안전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교훈을 테라-루나 사태 때 익히 배웠죠)
국가망에서 보호하지 못하는, 그리고 규제 대상이 아닌 해외 스테이블 코인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국내 투자자들은 아무런 법적 보호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국내 발행사는 겹겹의 규제로 묶어두면서, 정작 시장을 지배하는 해외 발행사는 무방비로 풀어두는 모순적인 상황이 되기도 하구요.
현재 제출된 법안에 따르면, 해외 발행 스테이블 코인은 아무런 인가 절차 없이 지금처럼 국내 거래소에서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습니다. 해외 발행사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들의 환불준비금이 정말 1:1로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는지, 재무 상태는 건전한지 검증할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법안의 이 부분에 대해서 국회 검토보고서는 이 점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검토보고서 60~61p)

시장 중심의 해법: '커스터디' 사업자의 역할론'
그렇다면 이 규제 공백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요?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 기업을 직접 규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저는 여기서 시장 중심의 대안으로 '커스터디(Custody) 사업자', 즉 법안에서 정의한 '디지털자산보관업'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하시나요? 3부에서 다뤘듯, '디지털자산보관업'은 거래소(중개업)와 마찬가지로 금융위의 가장 강력한 '인가'를 받아야 하는 사업자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코인을 보관하는 '디지털 금고'를 넘어, 해외 스테이블코인의 '안전성 검증자'이자 '보험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 1단계 (검증): 인가를 받은 커스터디 업체가 자체적으로 USDT나 USDC 같은 해외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준비금 현황, 재무 건전성 등을 실사하고 분석합니다.
- 2단계 (보증): 이 검증을 통과한 '안전한' 스테이블코인에 한해, 커스터디 업체는 "만약 이 스테이블코인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책임지고 보상하겠다"는 일종의 보증 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합니다.
- 3단계 (시장 형성): 투자자들은 약간의 수수료를 더 내더라도, 커스터디 업체의 보증을 받는 안전한 스테이블코인을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안전' 자체가 하나의 프리미엄 상품이 되어, 위험한 스테이블코인은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되는 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방식은 정부가 직접 투자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 위험을 분담하는 모델입니다. 하지만 국경 없는 디지털 자산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정부의 직접 규제와 더불어 신뢰할 수 있는 민간 사업자들이 '안전 시장'을 형성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나가면서.
- 테라-루나 사태의 교훈.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에 '발행인 인가제'라는 강력한 족쇄를 채웠다.
- 핵심은 '신뢰의 제도화'다. 보이지 않는 담보 대신, 이제 법으로 증명해야만 한다.
-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시장을 지배하는 USDT, USDC 같은 해외 스테이블코인은 이 모든 규칙에서 열외라는 점.
- 결국 국내 기업의 발목만 잡고, 정작 가장 큰 위험은 방치하는 모순. 이 딜레마를 풀지 못하면 반쪽짜리 규제에 그칠 뿐이다.
이제 법안의 주요 내용들을 거의 다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시장을 감독할 컨트롤 타워는 과연 누가 맡게 될까요? 마지막 6부에서는 이 거대한 시스템을 움직일 새로운 조직,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의 역할과 권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